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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이사야 6장 성경주석 본문
<이사야 6장 흐름정리>
본장은 이사야가 자신의 소명에 대해 밝히는 부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실을 첫머리에 밝히지 않고 중간에서 언급하고 있는 점도 본서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나 중대한 것이어서 우선 그것에 관해 경고하고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이 환상 중에 이사야를 부른 까닭은 그로 하여금 암담한 세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사야가 받은 첫 번째 사명은 유다 백성의 죄악을 그들 스스로에게 확인시켜 주는 일어었다.
<이사야 6장 줄거리>
1. 이사야가 영광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의 이상을 봄.
5. 이사야가 두려움 중에 자신의 기별에 대한 확증을 받음.
9. 황폐하게 될 때까지 완고한 백성의 모습을 봄.
13. 구원받을 남은 자들이 있을 것임.
<이사야 6장 개역한글>
1.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11.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12.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사야 6장 성경주석>
6: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이 해는 BC 740/739년이었을 것이다. 연대는 매우 중요한 항목임이 분명하다. 웃사야가 52년 동안의 긴 치세를 마감하던 해에 여호와께서 젊은 이사야에게 선지자로서의 그의 사명을 확증하는 이상을 보여 주시고 또한 그에게 이스라엘을 향한 책망의 기별을 주셨다(선지자와 왕, 305~307; 교회증언, V, 749, 750,). 그때는 위난과 난국의 시기였다. 앗수르의 대왕 디글랏 빌레셀 III세(Tiglath-pileser III)는 745년에 보좌에 앉자마자 거의 곧바로 일련의 원정을 시작하여 서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정복하였다(참조 이사야 서론). 그는 745년에는 바벨론을 향해 진군하였고, 744년에는 앗수르의 북동쪽에 있는 나라를 쳤으며, 743년에서 738년까지는 매년 북서쪽으로 원정을 갔다. 디글랏 빌레셀은 그의 연대기에 일반적으로 유다의 아사랴(웃시야)로 여겨지는 야우다(Iauda)의 아즈리아우(Azriau)에 대하여 자주 언급한다. 웃시야는 앗수르의 공격을 저항하는 일에 지중해 지역의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메넴도 언급되어 있다. 웃시야가 죽은 때는 디글랏 빌레셀이 서쪽에 대한 그의 원정을 한창 진행하던 시기였다. 그토록 강력하게 앗수르에 대항하던 그 사람이 죽었다. 이제 유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세계가 앗수르 군대의 먹이가 되고 마는 것인가? 자칭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죄로 인해서 이미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상실한 가운데 있었다. 앗수르군은 무적의 군대로 보였다. 유다가 정복당하고 온 세계가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다만 시간문제일 뿐인 것처럼 여겨졌다.
6:1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 이상을 볼 때 이사야는 성전 뜰에 기도하면서 서 있었다(선지자와 왕, 307). 그의 앞에서 성전 문이 열리는 듯이 보였고, 그는 지성소에서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성전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는 히브리어 단어 헤칼(hekal)은 본래 하늘 대왕의 “성전” 또는 “왕궁”을 의미한다(참조 시 11:4; 29:9; 합 2:20). “옷자락”은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의 두루마기이다. 요한은 이 이상을 그리스도께 적용하고 있다(요 12:41).
6:2 스랍들.
히브리어 스라핌(serapim), 문자적으로는 “불타는 [존재들]” 또는 “빛나는 [존재들].”
6:2 여섯 날개.
요한이 본 보좌 주변에 있는 생물들도 여섯 날개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계 4:8과 비교해 보라. 하지만 에스겔이 본 생물들은 네 날개가 있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겔 1:6). 이사야는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서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태도로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두 날개는 나는 데 사용하는 천사들을 보았다. 에스겔은 두 날개로는 몸을 가리고, 다른 두 날개는 위를 향해서 뻗은 생물들을 보았다(겔 1:11).
6:3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있는 천사들은 그분의 놀라운 속성, 곧 그분의 완전한 거룩성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요한이 본 보좌 주변에 있던 생물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계 4:8)라고 외쳤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마음에 당신의 거룩성에 대한 개념을 심어 주길 원하셨다. 이는 그 선지자가 그분의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품성의 이 속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또한 그로 인해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버리고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해 두루마리 1QIsa(참조 제1권, 32; 이사야 서론)에는 “가로되”가 빠져 있고, “거룩하다”라는 단어도 두 번만 나온다.
6:3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0:5과 비교해 보라.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깨닫게 되면 사람은 겸손히 그분 앞에 설 수밖에 없다. 흑암이 땅을 뒤덮고 큰 암흑이 그 백성을 휩싸고 있을 바로 그때에(60:2) 이사야는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뒤덮일 날을 바라보았다.
6:4 문지방의 터.
(「제임스왕역」에는 “문의 기둥”-역자 주). 문자적으로는 “문지방의 중심.” 이는 곧 문짝이 세워져 있는 구멍을 뜻한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해 성전의 기초 자체가 흔들린 것 같다.
6:4 연기.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을 드러내는 향의 연기. 시내산이 연기에 휩싸인 채 크게 흔들린 출 19:18과 비교해 보라. 또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성전이 연기로 가득 차 있는 계 15:8과도 비교해 보라.
6:5 화로다 나여.
이사야는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 중에 있는 죄인들에게 화를 선포한 적이 있었다(5:8~30). 이제 그는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두려운 임재 가운데 있음을 알고는 자신의 품성의 결함을 깊이 깨닫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면 이와 동일한 경험이 우리에게도 이르러 올 것이다.
6:5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거룩하심과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이상은 이사야로 사람이 죄되고 미천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그 영원하신 분 앞에서의 자신의 무가치함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5:24) 앞에서의 자신의 죄됨을 깨닫게 되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나아갈 때 자신의 얼굴을 가렸으며(출 3:6), 욥은 자신을 증오하며 티끌과 재 가운데 앉아 회개하였다(욥 42:6).
6:6 단.
곧 금향단(참조 출 30:1~5 주석). 이것은 본래 중보의 단이었다(참조 출 30:6~9 주석). 요한은 회개한 죄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도들이 향과 함께 은혜의 보좌 앞에 상달되는 것을 보았다(계 8:3, 4).
6:7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제단에서 꺼낸 숯은 더러움을 제거하고 깨끗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상징하였다. 이것은 또한 품성의 변화를 뜻하기도 하였다. 이후로 그의 백성을 향한 이사야의 가장 큰 갈망 중 하나는 그들도 이와 동일한 정화와 변화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가장 큰 필요는 하나님의 제단에서 꺼낸 불을 우리의 입술에 갖다대는 것이다.
6:8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즉각적으로 응답하였다. 바울처럼 이사야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오직 한 가지 큰 소망, 곧 그들의 구원을 위한 소망이 있었다(참조 롬 10:1). 그는 이 죄된 백성에게 심판이 곧 이르러 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버리는 모습을 보고자 갈망하였다. 이후로 이사야의 삶의 오직 한 가지 임무는 하나님의 경고와 희망의 기별을 이스라엘에게 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거룩하심을 깨닫고, 그 결과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6:9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많은 다른 선지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앞에도 매우 어려운 임무가 놓여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사람들이 그가 전하는 기별에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가 행하는 모든 사역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여전히 죄악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셨다. 그는 외견상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불행을 맛보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실패가 분명 그리스도(마 13:14, 15; 요 12:37~41)와 바울(행 28:26, 27)이 그들의 사역에서 맛본 실패보다 더 크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사야의 이 말은 신약 시대에 적용되는 말로도 여러 차례 인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그의 사역이 완전히 헛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구원받을 한 남은 무리가 있음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었다(1:9; 6:13; 10:21). 하지만 바울은 그의 시대에 유대인들이 이미 자신들의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으며, 그 결과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했음을 알고 있었다(행 28:26~28; 롬 9~11)
6:10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이스라엘은 그 영적 지각력이 너무나도 둔해져서 하늘에서부터 오는 가장 감동적인 기별까지도 듣지 않게 될 것이었다. 마음이 강퍅해져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서 보내신 기별에 따르기를 거절한 바로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였다(참조 출 4:21 주석). 이사야의 시대에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거나 혹은 그들의 마음을 둔하게 한 것 은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 아니었다. 이 같은 상황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내신 경고들을 거절함으로 그들 자신이 자초한 것이었다. 진리를 거절할 때마다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지고 영적 지각력은 점점 더 둔해지다가 결국에는 영적인 것들을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죽는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들을 악의 길로부터 돌이키시기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신다. 이는 그들로 죽지 않고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겔 18:23~32; 33:11; 딤전 2:4; 벧후 3:9).
6:11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이사야는 전혀 가망이 없는 전망에 직면하였다. 그는 여호와께서 묘사하신 상황이 무한정 계속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틀림없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기별을 받아들일 것이었다. 이 질문은 이 같은 그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6:11 성읍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이 같은 상황이 유다가 스스로 멸망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슬픈 대답을 주셨다. 회개할 희망도, 또한 생존할 희망도 전혀 없었다. 한 남은 무리만 구원을 받을 것이었다. 이사야가 그의 구원의 기별을 선포하는 것은 바로 이 신실한 무리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체 나라는 악한 길에서 돌이키기를 거절할 것이었다. 바로 이 거절로 인하여 그 나라는 마침내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당케 될 것이었다. 성읍들에는 거민들이 없을 것이며 그 땅은 완전히 황무하여 버려진 땅이 될 것이었다. 죄는 행복이 아닌 재앙을, 번영이 아니 파멸을, 생명이 아닌 사망을 가져다 준다. 이는 하나님의 대변자들이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이 세상에 제시한 위대한 교훈이다(참조 레 26:31~33; 사 1:20; 5:9; 14:17, 20; 렘 4:7, 20, 23~27; 7:34; 9:11; 26:6, 18; 미 3:12 등).
6:12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것은 곧 다가올 사로잡힘을 일컫는 말이다. 첫 번째로는 이사야의 시대에 앗수르에 의해서, 그 다음에는 한 세기 후에 바벨론에 의해서 백성이 이국 땅으로 옮겨질 것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에 대하여 조건적으로 예언하였다(레 26:33; 신 4:26~28; 28:64).
6:12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하나님께서 장미꽃을 피우고자 하셨던 땅이 황폐한 땅이 될 것이며, 그 거민들은 버린 바 될 것이었다. 거기에는 번영은 없고 파멸만 있을 것이었다.
6:13 십분의 일.
히브리 성경의 13절에 세부적으로 명확치 않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 절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이 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그[즉 그 땅; 참조 12절] 안에 아직도 10분의 1이 있을 것이요 그[그 땅, 또는 그 십분의 일]가 돌아올 것이라[또는 남아 있을 것이라] 그가 테레빈나무, 상수리나무처럼 태워질 것이나 그 나무들이 베임을 당하여도 그[그 땅 또는 10분의 1; 혹은 테레빈나무와 상수리나무] 안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처럼 거기에도 거룩한 씨가 남아 있을 것이라.” 이 절의 근본 의미는 명확하다. 11, 12절에서 바벨론 유수 동안의 유다의 황폐함이 묘사되었다. 비록 그 땅이 완전히 황폐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지만 이것이 한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었다(참조 렘 4:27; 5:10, 18; 30:11; 46:28). 그 나라가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었다. 이사야가 그들에게 전하는 기별에 대하여 완전히 망하여 사로잡히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계속 자신들의 눈과 귀를 막아 버리는 비관적인 백성의 모습이 여기에서 그 땅이 완전히 버림을 당한 상태로 남겨지지는 않을 것이며, 또한 결국 그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 것임을 보여 주는 모습과 뒤섞인다(선지자와 왕 309, 310,). 문자적으로 “남은 무리가 돌아올 것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이사야의 첫 아들의 이름 스알야숩과 비교해 보라. “남은 무리”가 “돌아올” 것이라는 사상은 이사야서 전체를 통해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4:2, 3; 10:12 등). 남은 무리가 원래 있던 사람들의 “십분의 일”이라는 사실에 어떤 특정한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10은 작은 숫자이며, 때로는 막연한 숫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열 번째 부분은 수효가 매우 적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6:13 밤나무.
테레빈이 열리는 테레빈나무를 일컫는 듯하다. 그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서 그 그루터기 외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그루터기에서 새 나무가 나서 자라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기별은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기별이었다. 이사야의 사역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는데, 이는 종국에 가서 한 남은 무리가 구원을 받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6:13 거룩한 씨.
“그루터기” 안에 생명이 남아 있을 것이며, 마침내 이 생명이 다시 피어나서 새로운 나무가 될 것이었다. 구약에서 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상징으로 흔히 쓰인다(참조 사 65:22; 렘 17:8; 단 4:14, 23). 이 “거룩한 씨”에서 새롭고 영광스런 이스라엘이 일어날 것이었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7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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