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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편 본문

성경일독학교 2학년/시편

시편 51편

Timberners-Lee 2017. 9. 18. 02:07

<시편 51편 서론>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시 51편은 통회의 시이다. 이 것은 다윗이 “(밧세바와 더불어) 큰 죄를 범한 후에 가책과 자기혐오로 인한 고뇌 속에서” 지은 시이다. 이 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책망의 기별이 다윗에게 이르렀을 때에” 그가 나타낸 “회개의 표현”이다. 그는 “그의 백성의 공중 회집에서…이 노래를 부르게 하여…다른 사람들이 그의 타락의 슬픈 역사로 교훈을 받을 수 있기를 갈망하였다”. 이 시는 성령을 통하여 용서받고 성화되기를 간구하는 시이다. 이 시에는 탄원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비와 미래를 위한 약속들에 대한 감사의 서원들이 포함되어 있다. 아마도 구약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용서하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권능을 신뢰하는, 진정으로 회개한 죄인의 모습을 다윗의 범죄 경험을 묘사한 이 구절보다 더 선명하게 그리는 구절을 찾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시는 삼하 12:1~13과 시 32편에 비추어 연구해야만 한다.  시 51편은 존 번연(John Bunyan)이 좋아한 시였다. 제인 그레이 부인(Lady Jane Grey)은 처형되기 직전에(1554) 교수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이 시를 영어로 암송하였다.


<시편 51편 도움말>

* 1절 : 긍휼히 여기시며.

다윗은 우리아와 밧세바에게 범한 큰 죄를 자각한 후, 비통한 마음으로 또한 그로 인한 죄책감에 짓눌린 상태로,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는다. 이 부르짖음에는 그 어떤 핑계나 변명도 없고, 자신을 옹호하고자 하는 그 어떤 시도도 없으며 또한 자기를 정죄한 율법의 공의에 대한 그 어떤 원망도 없다. 다윗은 참다운 겸비 가운데 다른 어떤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만을 비난한다.


* 2절 : 말갛게 씻기시며.

문자적으로 “저를 씻기는 것을 늘려 주소서”. 이 히브리어 단어는 옷을 빠는 것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단어이다.


* 4절 : 주께만.

다윗이 우리아와 밧세바에게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의미하는 바는 모든 죄는 본질상 다 하나님께 범하는 죄라는 것이다. 다윗은 나단이 자기에게 유죄를 선고했을 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고 선언하였다. 요셉 또한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라는 말을 통해서 만일 자신이 유혹에 넘어간다면 그 죄는 곧 하나님께 범하는 죄임을 인정하였다.


* 5절 :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다윗은 아이들이 악의 성향이 있는 본성을 지니고 태어남을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죄에 대한 핑계거리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타고난 악한 성향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가 더욱 크게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노력하였다.


* 7절 : 우슬초.

레위법에서 우슬초는 정결을 위한 의식들에 사용되었다. 다윗은 가장 위대한 정결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치료제만이 자신을 더러움에서 깨끗케 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 7절 : 나를 씻기소서.

다윗은 의식법의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죄로 인해 표적에서 벗어났을 때 다윗의 이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삼아야 만 한다.


* 8절 :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다윗은 하나님의 다정한 용서의 음성 듣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것이 그가 최고로 열망하던 것이었다.


* 10절 : 정한 마음.

곧 “변치 않는 마음.” 다윗의 기도는 믿음에 확고하며 따라서 순종에도 변함이 없는 마음을 구하는 기도이다. 시인은 완전히 새로운 정신적, 도덕적 본성을 갖게 되기를 갈망한다. 다윗은 이 기도를 드릴 때에 “용서의 참된 개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산상보훈, 167). 다른 모든 영혼도 다윗이 드린 이 같은 탄원을 드려야만 한다.


* 13절 : 돌아오리이다.

다윗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죄인들이 아무리 깊이 타락해 있다 해도 그들이 죄를 버리면 하나님은 자비를 베푼다.


* 19절 : 번제와.

종교의 외형은 그 나름대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의문의 율법을 제정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셨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366 367). 이 율법에 규정된 다양한 봉사들은 모두 중요한 교훈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의 죄는 이 같은 외적 형식들을 종교의 전부로 삼는 데 있다. 다윗은 공중 예배의 외형들이 예배하는 자가 지니고 있는 진실한 정신의 외적인 표가 되는 경우에 그것들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우리는 공중 예배에서 매우 형식적인 부분들을 통해서 겸허한 예배 정신이 보존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예배를 드릴 때 어떤 형식을 따르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잘못은 그 형식의 동기가 되는 신앙심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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