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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이사야 13장 성경주석 본문
<이사야 13장 흐름정리>
본장에서부터 28장까지는 예언의 대상이 하나님의 선민에서 열방들로 바뀌어 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닌 온 세상과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알려주는 것이다. 한편, 13~14장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BC 7세기경, 바벨론은 앗수르를 쳐부수고 근동 지방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남 유다도 바로 이 바벨론에 의해 BC 586년에 멸망당했다. 그러나 본문은 이러한 바벨론이 장차 메대에 의해 멸망당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이사야 13장 줄거리>
1. 하나님께서 그분의 분노의 군대를 소집하심.
6. 하나님께서 메대를 통해서 바벨론을 멸망시키실 것을 경고하심.
19. 바벨론의 황폐.
<이사야 13장 개역한글>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2. 너희는 자산 위에 기호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로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
3. 내가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에게 명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들을 불러 나의 노를 풀게 하였느니라
4.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5. 무리가 먼 나라에서, 하늘 가에서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
6. 너희는 애곡할찌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7. 그러므로 모든 손이 피곤하며 각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
8.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잡혀서 임산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 같으리로다
9.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10.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11.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12.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
1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14.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 같이 각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15. 만나는 자는 창에 찔리겠고 잡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겠고
16. 그들의 어린 아이들은 그 목전에 메어침을 입겠고 그 집은 노략을 당하겠고 그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
17.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니
18. 메대 사람이 활로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가석히 보지 아니하리라
19.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
20. 그곳에 처할 자가 없겠고 거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 아라비아 사람도 거기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곳에 그 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21.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가옥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 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22.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 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13장 성경주석>
(이사야 13:1) 경고
또는 “짐.” 구체적으로 이곳에서는 “예언”, “엄중한 기별”을 의미함. 힘있는 세력들에게 보내는 기별에 이사야는 자주 이 용어를 사용한다(참조 15:1; 17:1; 19:1; 21:1; 22:1; 23:1). 이 “경고”는 14:28까지 이어진다(참조 14:1 주석). 이것은 BC 716/715년에 시작된다(참조 14:28 주석). 유다와 예루살렘에 일련의 기별을 선포한 후에 이사야는 이제 주변 국가들로 눈을 돌린다. 이 부분은 13~23장에 나타난다. 여기에 포함된 기별들은 근본적으로 그곳에 언급된 나라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전달하기 위해 주어진 기별인데, 이는 그들로 주변 국가들을 취급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사야는 바벨론을 시작으로 하여 모압, 아람, 구스, 두로 등을 차례로 언급하고 있다. 족장 시대에 바벨론은 동방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였다. 그러나 이사야 시대부터 약 800년 전에 바벨론은 쇠퇴기에 접어든 반면, 애굽과 앗수르 그리고 헷 제국이 근동 지역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비록 바벨론이 이사야 당시에는 앗수르의 속국이었지만 잃었던 세력을 얻기 시작하였으며, 다음 한 세기 만에 또다시 서아시아에서 걸출한 나라가 되었다. 729/728년에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III세가 바벨론의 왕이 되어 풀루(Pulu)라는 이름으로 다스렸고, 709년에는 사르곤이 바벨론의 왕이 되었다. 사르곤과 산헤립의 통치 기간에 바벨론의 므로닥발라단은 앗수르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그는 여러 번 바벨론에서 추방되었으나 그때마다 되돌아왔다. 앗수르에 대항하는 자신을 지원하도록 히스기야와 동맹을 맺은 사람이 므로닥발라단이었다. 바벨론이 여러 번 반역을 일으키자 화가 난 산헤립은 689년에 그 도성을 멸망시켰으나, 그 세기가 지나기 전에 바벨론은 재건되었다. 이 기간에 대해서는 제3권, 83~88, 119~121을 참조하라.
(이사야 13:2) 자산
문자적으로 “민둥산”, 또는 “쓸려 내려가 벌거벗겨진 산.”
기호(旗號)를 세우고. 하나님은 바벨론이 멸망할 것에 대한 신호를 보내려고 하셨다. 교만하고 사악한 도성이 마침내 멸망할 때까지 열방 중에서 한 세력 한 세력이 차례로 그 도성에 등을 돌리도록 일을 도모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산 위에 세워진 기호(旗號)는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고, 그와 같이 바벨론이 멸망할 것에 대한 여호와의 신호가 있었다. 떨리고 흔들리는 손은 그 도성을 향한 분노와 임박한 심판을 가리키는 표시였다(참조 10:32 주석).
(이사야 13:3)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
또는 “나의 헌신한 자”, “나의 바쳐진 자”(「개정표준역」). 즉 특별한 일을 이루기 위해 따로 구별된 사람들. 앗수르(사 10:5)와 바벨론(렘 25:9; 합 1:6) 그리고 후에 메대와 바사(사 13:17; 45:1~4; 참조 단 5:30, 31)는 역사의 무대 위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담당하도록 선택되었다.
(이사야 13:3)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자들]
문자적으로 “나의 도도하게(또는 주제넘게) 기뻐 날뛰는 자들.” 앗수르(참조 10:7~17)와 바벨론(참조 단 4:30; 5:20~28)은 하늘이 자신들에게 부여한 힘을 거만하고 방자하게 행사하였다.
(이사야 13:4) 산
히브리어 본문에서 13장은 시이며, 따라서 이사야는 “산”을 단순한 시적 표현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이 예언 자체가 상징적인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산”이 어떤 상징적 의미는 지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사야 13:4) 무리의 소리
문자적으로 “떠들썩한 소리.”
(이사야 13:4) 싸움을 위하여
즉 “전쟁으로” 또는 “전쟁을 위해.”
(이사야 13:4)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렘 50:9, 10, 14, 29~31; 겔 38:14~16; 욜 3:1, 2, 9~17; 습 3:8; 슥 14:2, 3; 계 16:13, 14; 17:14, 17; 19:11~21과 비교하라. 바벨론과의 전쟁을 위해 군대가 소집된다. 사 13장에 “바벨론에 대한 경고”()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는 것과 13장 전체가 문자적 바벨론의 멸망과 황폐에 대한 실제적인 예언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약의 기자들은 문자적 바벨론의 멸망을 상징적 바벨론에 대한 비유로 제시했다(참조 계 14:8; 17:16; 18:4; 19:2). 그러므로 영감의 기록이 그 상세한 부분을 상징적 바벨론에 적용한 점으로 보아, 여기에 묘사된 실제적 바벨론의 멸망은 상징적 바벨론에 대한 묘사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예언들의 이중적 성취에 대해서는 신 18:15 주석; 49, 50쪽을 참조하라.
(이사야 13:5) 병기
즉 바벨론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 애굽에 내린 재앙들과 주변 나라들과 세상 끝에 임할 그분의 진노를 비교하라(참조 출 7:19~12:30; 사 26:20; 34:2~9; 나 1:5~7; 계 14:10; 15:1).
(이사야 13:6) 여호와의 날
이 표현은 여러 구약 선지자들의 기록 중에서 최소한 20회 이상 볼 수 있다. 그것은 항상 (개인에게보다는) 어떤 도시나 국가 또는 궁극적으로 온 세상 거민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을 언급할 때 사용된다. 이와는 달리 “사람의 날”로 불릴 만한 것은 성경에서 “구원의 날”(사 49:8; 고후 6:2), “열납하시는 때”(시 69:13),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사람들을 위한 은혜의 기간이 여전히 남아 있는 때(참조 95:7, 8; 히 4:7)로 묘사되어 있다. 반대로, “여호와의 날”은 역사적으로 어떤 도시나 국가에 대한 은혜의 기간이 마쳐지고, 마침내 모든 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는 때를 의미한다. “구원의 날” 동안 사람이나 국가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의와 불의를 선택하는 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여호와의 날”의 도래와 함께 하나님의 뜻은 최상의 권위를 가지게 될 것이며, 더 이상 사람의 뜻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를 향한 “여호와의 날”(참조 사 2:12; 욜 1:15; 2:1; 습 1:7)은 유다가 하나의 국가로서 사악한 길로 계속 가는 것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그 나라에 정해졌음을 의미하는 날이다(겔 12:21~28). 북방 이스라엘(암 5:18)이나 애굽(겔 30:3), 에돔(옵 15) 그리고 고대의 다른 나라들(참조 단 5:22~31)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호와의 날”이 어떤 도성이나 온 나라에 임했을 때 일어난 것들은 온 세상의 은혜의 기간이 마쳐질 때 세상에 임할 것과 유사한 것이다. 예를 들어 마 24장에서 예루살렘 도성과 유대 민족에 대한 그리스도의 묘사는, 분명히 많은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 끝”에 일어날 일들과 유사하다(w/24/3e; 눅 21:20; 참조 마 24:30). 따라서 “여호와의 날”이 어느 도시나 국가에 임하는 때에 대해 적용하는 원칙들은 “여호와의 날”이 온 세상에 임하는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며, 구약에 나타난 어떤 도성이나 국가의 운명에 대한 예언적 묘사들 또한 원칙적으로 “여호와의 큰 날”(습 1:14)에도 적용된다. 신약 기자들이 고대 바벨론의 운명을 영적 바벨론의 운명에 대한 상징으로 보았으며(참조 사 13:4 주석), “여호와의 날”을 그리스도께서 심판하기 위해 이 땅에 임하는 때에 적용하였으므로(고전 5:5; 고후 1:14; 살전 5:2; 벧후 3:10), 사 13장에 묘사된 바벨론에 임하는 “여호와의 날” 또한 여러 면에서 마지막 때에 임할 “여호와의 큰 날”을 묘사한 것이다.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성경에서 “여호와의 날”에 대해 언급한 경우 사람에게 두 번째 기회, 즉 구원을 받아들일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내용은 어느 곳에도 없다. “여호와의 날”은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항상 심판의 날이며 멸망의 날이요 어둠의 날이다(참조 욜 1:15; 2:1, 2; 암 5:18~20 등).
(이사야 13:7) 피곤하며
문자적으로 “느슨하게 하다”, “떨어뜨리다” 또는 “숙이다.” 이런 손의 자세는 절망감과 무력감, 때로는 이곳에서와 같이 희망 없음을 보여 주는 모습이다(참조 히 12:12).
(이사야 13:8) 임산한 여자같이
이 말은 극도의 고통과 고민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종종 쓰인다(참조 시 48:6; 렘 4:31; 6:24; 13:21; 49:24; 50:43).
(이사야 13:8) 불꽃 같으리로다
사람들이 극도의 공포감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눈은 두려움으로 놀라 초점이 흐려지고 두려움은 강렬한 불꽃처럼 삽시간에 번져간다.
(이사야 13:9) 여호와의 날
참조 6절 주석.
(이사야 13:9) 땅을 황무케 하며
죄의 마지막은 생명과 번영이 아니라 황무함과 파멸 그리고 죽음이다. 죄는 한때 번영했던 앗수르와 바벨론을 황무케 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온 세상을 그렇게 할 것이다. 본래 문자적 바벨론의 멸망을 묘사하고 있는 이 예언을 신약 기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상징적 바벨론이 황폐케 될 것에 적용하고 있다(참조 4절 주석).
(이사야 13:9) 죄인을 멸하리니
죄인의 멸망은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 마음대로 하시는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찾고 계신다(겔 18:23, 31, 32; 벧후 3:9). 그러나 궁극적으로 죄인을 멸망시키는 것은 죄이다. 죄악 중에 거하는 사람은 결국 너무 타락하고 포학하며 이성적 판단력이 상실되므로, 주변 사람들을 해치기 위해 선택하는 모든 방법에 의해 자신도 멸망에 이르게 된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창 9:6).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창 26:52; 참조 계 13:10). 역사는 이 말씀이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다. 바벨론은 검을 가졌으며 그것에 의해 멸망당했다. 헷과 앗수르 그리고 헬라와 로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이 원칙이 죄된 세상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이사야 13:10) 별들
하늘에 있는 광명들이 그 빛을 거두는 초자연적인 어둠은 종종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이 수반하는 현상 중 하나로 언급되었다(욜 2:10, 11; 3:15, 16; 암 8:9; 참조 마 24:29; 막 13:24, 25; 눅 21:25; 계 6:12, 13; 각 시대의 대쟁투 636, 637,). 참조 교육, 41.
(이사야 13:11)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공의는 악을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인간의 악함이 처벌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을 용납지 않으신다. 죄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들이 평가되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참조 전 8:11).
(이사야 13:12) 희소케 하며
또는 “더욱 드물게 하며.”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은 지상에서 사람들이 없어지게 하며 지구가 황무케 되는 것을 의미한다(9절). 오직 의로운 남은 자들만이 큰 파멸을 피할 것이다. 수적으로 매우 적은 그들은 “희소케” 되며 “오빌의 순금”같이 될 것이다.
(이사야 13:13) 하늘을 진동시키며
13절과 14절은 문자적 바벨론의 멸명과 관련하여 19~22절에 더 문자적으로 표현된 철저한 파멸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세상 끝과 관련해서도 그것은 문자 그대로이다(참조 히 12:26; 계 6:14; 부조와 선지자, 340). 굉장한 변동이 지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37; 참조 사 2:21).
(이사야 13:13) 맹렬히 노하는
문자적 바벨론에 대해 “노하는”(참조 19절; 참조 4절 주석). 상징적 바벨론과 세상 끝에 관하여 이곳에 묘사된 장면들은 일곱 재앙 중 일곱 번째 재앙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건들인데,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을(계 16:19)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사야 13:14) 쫓긴 노루…같이
또는 “사냥 당하는 영양처럼”(「개정표준역」). 참조 4절 주석. 마지막 날에 모든 나라의 악인들은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 두려움을 느낄 때 동물들이 과거에 자신들에게 은신처와 피난처였던 곳을 찾는 것처럼, 악인들도 하나님의 진노로터 숨을 수 있는 어떤 장소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이사야 13:15) 창에 찔리겠고
선지자는 신약 기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적용하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시각적인 묘사를 계속하고 있다(참조 4절 주석). 바벨론 사람들이 적들 앞에서 도망한다.
(이사야 13:17) 은
메대 사람들의 최고 관심거리는 전리품이 아닌 것으로 여기에 묘사되었다. 그들은 바벨론 자체를 원한 것이지 바벨론이 가진 부가 우선적인 관심이 아니었다. 그들은 힘을 얻고자 했다. 그들은 약탈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정복하러 왔다.
(이사야 13:17) 메대 사람
이사야 당시에 바벨론의 최대의 적은 앗수르였다. 예를 들면 689년에 산헤립이 이끄는 군대가 그 도성을 완전히 짓밟아 놓았다(참조 제3권, 87, 88). 그러나 그 당시 메대 왕국은 상대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기에서 예언은 메대가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때가 있을 것임을 미리 말하고 있다. 바벨론이 BC 539년에 고레스의 수중에 넘어갈 때 메대는 바사와 연합하였다. 마지막 전쟁에서 메대 사람인 다리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단 5:31). 이사야는 또한 바벨론과의 전쟁에서 고레스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예언하였다(사 44:27, 28; 45:1~3). 그러나 바벨론의 최종적인 파멸은 수 세기 후에 있었다(참조 19절 주석).
(이사야 13:19) 열국의 영광
갈대아 왕조의 통치 아래 바벨론이 그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최고의 명성과 드높은 명예를 얻게 된 것은 이사야 이후 한 세기가 지나서였다.
(이사야 13:19) 소돔
참조 창 19:24 주석. 최고조에 달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때의 바벨론을 보았던 예레미야도 그것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될 것을 예언하였다(렘 50:40). 그 멸망은 확실하며 결코 다시 세워지지 않을 것이다(렘 51:64). 상징적 바벨론이 세상 끝에 당할 운명도 이와 같을 것이다(계 18:21). 이사야가 생존해 있는 동안 바벨론 도성은 산헤립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으나(참조 17절 주석), 그의 아들인 에살핫돈이 그곳을 다시 건축하였다. 그후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의 왕이 되면서 그 도성을 고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성 중 하나로 만들었다. BC 539년에 메대와 바사가 바벨론을 점령했지만 그들은 그 도성을 파멸시키지 않고 자신들의 수도로 삼았다. 반세기 후에 그 도성에서 반역이 일어나자 아닥사스다는 부분적으로 바벨론을 파괴하였다. 그 후로 바벨론은 완전하게 복구된 적이 없었고 그 옛 명성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도성은 일부분이 파괴된 채로 331년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점령된 후 수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이 예언은 그가 죽은 후 수 세기 동안 성취되지 않았다.
셀류쿠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 BC 312~280년)가 알렉산더 제국의 동부지역을 통치할 때부터 바벨론의 중요성이 감소하게 되었다. 305년경에 이 왕은 바벨론에서 북동쪽으로 5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오피스(Opis) 지역의 티그리스 강 위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고, 그곳을 자신의 이름을 따라 셀류키아(Seleucia)로 명명하였다. 새로운 도성에 필요한 자재들과 인구의 일부는 바벨론에서 취했으므로 바벨론의 옛 영화는 영원히 사라졌다. 그러나 바벨론은 아마도 2세기 이상 어느 정도 중요성을 유지하였다. BC 2세기경 스트라본(Strabo) 때에 비록 주민들이 거하고는 있었지만 바벨론의 상당한 지역이 황폐되었다(Strabo xvi. 1. 5). 트라야누스(AD 98~117년)가 통치할 당시 그 도성은 완전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사야 13:20) 그곳에 처할 자가 없겠고
바벨론이 마침내 황폐되었을 때 버려진 성읍이 되었다. 이사야의 시대보다 1세기 후에 예레미야는 이와 유사한 예언을 했다(렘 51:37).
(이사야 13:20) 아라비아 사람
“아라비아 사람”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 동부 사막 지역에서 이리저리 떠돌며 생활하는 베두인 유목민들을 지칭한다.
(이사야 13:20)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고대 시대에 바벨론이 황폐화된 이후로(참조 19절 주석), 그 장소에는 거민들이 살지 않았다. 옛날에 그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때때로 주변의 베두인들이 그 장소에 대한 미신적인 두려움 때문에 그 폐허를 피했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 어느 시절에는 사실이었겠지만 현대의 베두인들이 제시하는 이유는 단지 고대의 폐허가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라비아 사람”들은 “거기 장막을 치지 아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두인들이 고대 바벨론 자리에 거주한다고 해서 이사야의 예언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 선지자는 바벨론의 이방 종교와 이교 문화 그리고 군사적인 힘으로 세워진 난공불락의 성벽과 웅장한 궁전에 그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황폐하고 버려진 그 도시에 대한 그의 생생한 묘사는 당시의 거만하던 제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힘있게 선언하고 있다. 수백 년의 시간은 이사야의 예언의 정확성을 증거하는데, 그 고대의 문명이 폐허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참조 겔 26:14 주석.
(이사야 13:21) 들짐승들
사람들이 떠난 후에 고대 바벨론의 터는 들짐승의 거주지가 되었다. 강한 남자들과 아름다운 여인들 대신 야생의 동물이 그곳에 거하고 있다.
(이사야 13:21) 부르짖는 짐승
히브리어 오힘(‘oh.im). 오직 이곳에 한 번 쓰였으며 그 의미는 잘 알지 못한다. 오힘이라는 단어는 짐승의 울부짖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서는 독수리 부엉이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다른 이들은 오힘을 “부르짖음”으로 해석한다.
(이사야 13:21) 타조
히브리어 브노트 야아나(benot ya-‘anah), “타조.”
(이사야 13:21) 들양
히브리어 스이림(se‘irim), 복수는 사이르(sa‘ir). 문자적으로는 “털이 많은”, 또는 “털북숭이의.” 염소들이 털이 많으므로 “털이 많은 [것]”이라는 표현은 “염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세일이라는 이름(창 32:3)은 같은 히브리어 단어에서 나온 것이다. 사이르는 후에 상징적으로 염소 모양의 귀신들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으나, 이곳에서 이사야가 귀신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사 13:21, 22에 언급된 다른 동물들은 실제 짐승이다. 이곳에서 사용된 사이르는 단순히 “[야생] 염소”를 의미한다.
(이사야 13:22) 시랑
히브리어 이임(’iyyim). 아마도 “자칼”이나 “하이에나”를 의미할 것임. 옛 궁전에서는 화려한 바벨론의 축제 음악 대신 이곳에 언급된 여러 들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게 될 것이었다.
(이사야 13:22) 들개
(「제임스왕역」에는 “dragons”-역자 주). 히브리어 탄님(tannim), “자칼.” “용”으로 번역한 것은 탄님(tannim)과 “용” 또는 “고래”를 의미하는 탄닌(tannin)을 혼동했기 때문이다(참조 시 74:13 주석).
(이사야 13:22) 가까우며
바벨론 성은 이사야가 살아 있던 BC 689년에 산헤립에게 완전히 파괴되었다(참조 17, 19절 주석). 이것이 바벨론의 최후는 아니었으며 그 성은 다시 건축되었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7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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