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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열왕기상 19장 & 성경주석 본문
<열왕기상 19장 흐름정리>
바알 선지자들이 모두 죽임당한 일로 분노한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 하자, 광야로 도피한 그는 그만 낙심하였다. 이는 그도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엘리야를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고 위로하며 영적으로 재각성시키신 후, 아람의 하사엘과 이스라엘의 예후,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각기 왕들과 선지자로 세우라는 명을 주셨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수행해야지 인간의 판단이나 힘으로 하려 해서는 안 됨을 깨닫게 된다.
<열왕기상 19장 줄거리>
1. 엘리야가 에세벨에게 위협을 받자 브엘세바로 도망감.
4. 광야에서 피곤하여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를 천사가 위로함.
9. 호렙산에서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나타나 하사엘, 예후, 엘리사에게 기름 부으라고 그를 보냄.
19. 엘리사가 친구들과 작별하고 엘리야를 따름.
<열왕기상 19장 개역한글>
1.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 들었더라
<열왕기상 19장 성경주석>
19:1 이세벨에게 고하니.
즉 엘리야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행한 일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고하니. 그러나 이 이야기가 이세벨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의 악한 행실을 고치게 하는 데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였다. 진리를 듣기만 하고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면 마음이 강퍅케 될 뿐이다.
19:2 네 생명으로.
그는 자신의 주인을 위해 영웅적인 봉사를 행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이제 그의 고귀한 봉사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이 세상에서는 의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한 봉사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인생의 명백한 비극 중 하나는 의로운 일을 위해서 가장 많은 일을 행한 사람들이 고통도 가장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항상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죄 없는 분이셨던 예수님도 인간 가족 중 어떤 자녀보다도 더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한 법이다.
19:3 그 생명을 위하여.
바알의 선지자들을 압도한 완벽한 승리와 대단한 용기를 보여 준 이후에 하나님의 선지자는 어떤 믿음의 시련도 대처해 나갈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엘리야에게는 하나님의 축복과 그분이 함께하신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절대로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뒤에 자주 뒤따라오는 무력감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는 갈멜산에서 거둔 그 영광스런 승리가 아합을 붙들고 있는 이세벨의 마력을 깨뜨리기를 바랐을 것이다. 선지자는 이세벨이 개혁에 대한 새로운 호소를 완강히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이 사악한 왕비의 냉정하고 결연한 증오심에 저항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처럼 원한에 차 있는 잔인한 원수의 마수를 피할 방법을 생각할 뿐이었다.
엘리야는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났다는 점에서 그릇 행하였다. 그의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싸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였다. 그가 만일 굳건히 서서 왕비에게 기별을 보내 바알의 선지자들을 이기게 하신 분이 지금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더라면 천사들이 그의 생명을 보호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놀라운 모습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세벨에게 임하여 백성들에게 대단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며 힘 있는 개혁이 전국을 휩쓸었을 것이다(참조 선지자와 왕, 160). 엘리야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도망함으로써 원수의 술수에 넘어갔다. 브엘세바로 도망간 것은 갈멜산에 얻은 승리의 효과를 현저히 감소시키는 행위였다.
19:3 브엘세바.
이 성읍은 이스르엘에서 152킬로미터 떨어진 유다 남방 국경 지역에 있었다. 그곳은 남방 유다의 성읍이었고, 따라서 당시 남방 유다는 북방 이스라엘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으므로 거기서도 엘리야는 안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19:4 하룻길쯤.
엘리야는 유다에서도 쉬지 않고 걸었다. 두려움이 그를 내몰았다. 남쪽 광야를 하룻길쯤 가서야 비로소 멈춰 서서 휴식을 취하였다. 이 지점에 올 때까지 그는 밤낮으로 계속 걸었던 것 같다. 이런 힘은 그를 완전히 압도한 두려움에서 생겨난 힘이었다. 그가 로뎀 나무 아래 앉았을 때 그의 체력은 완전히 소진되어 있었다.
19:4 죽기를 구하여.
선지자는 낙담할 대로 낙담하였다. 갈멜산에서 승리할 때는 힘이 솟구쳐 하늘을 찌를 듯하였지만, 이제 그가 며칠 전에 경험한 일을 돌이켜 볼 때 그의 마음은 땅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였다. 그의 고통은 지나친 긴장감에서 오는 무기력 때문이었다. 그것은 때때로 어떤 영혼이 높은 수준의 영광과 승리에 이른 후에 뒤따라오는 경험 즉 큰 신앙적 부흥의 여파로 오는 경험과 같은 것이다. 그때 영혼은 일상의 생활에서 오는 실망과 낙담에 마음이 꺾인다. 우리가 똑똑히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언제나 산의 정상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때때로 인생길은 내리막길로 치달아 골짜기에 이르고, 거기서 곤고와 실망을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정상에 있을 때 행복해 하고 용기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마음이 침체되어 세상 모든 것이 그를 결정적으로 파멸시킬 것처럼 보일 때는 그렇게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온 힘을 다하여 계속 하나님을 굳게 붙들 필요가 있는 때는 바로 그때이다. 그렇게 하여 의심과 절망감을 극복할 수 있다. 미끄러져 내릴 때 위를 쳐다 보라. 그리고 다시 높은 곳으로 기어올라가라.
19:5 어루만지며.
엘리야가 잠들었을 때 한 손이 그의 옆구리를 어루만지며 낭랑한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하였다. 그것은 생명과 희망의 기별을 가지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한 천사였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먹을 음식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육신의 필요를 채워 주고, 영혼에 용기를 회복시켜 주는 데 도움을 줄 것이었다. 풀이 죽은 사람의 마음을 소생시켜 주고, 소진된 힘과 용기를 회복시켜 주는 일에 음식물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 지칠 대로 지치고 피로한 선지자를 위한 하나님의 단순한 치료법에는 거룩한 지혜가 들어 있다.
19:7 또다시 와서.
그때 엘리야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과 휴식이었고, 따라서 하나님은 다시 그에게 정성스럽게 음식을 베풀었다. 그를 위해 식사를 준비한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천사였다.
19:7 길을 이기지 못할까.
(「제임스왕역」에는 “the journey is too great”[길이 너무 멀어서]로 되어 있음-역자 주). 되돌아가는 길이 앞으로 여행할 길보다 더 가까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를 나무라지도 않았고 발길을 돌이키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이 여행은 엘리야의 계획이었지 주의 계획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를 그냥 버려 두지 않고 그의 여행을 도왔다. 그를 격려하기 위해서 양식을 공급해 주고 앞에 있는 어려운 날들을 위해서 힘을 주었다. 비록 엘리야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고, 그가 다시 하나님을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회복시키려 하고 있었다.
19:8 호렙에 이르니라.
그의 여행길에는 이스라엘이 40년간 방황한 광야 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여행은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무척 힘든 길이었다. 대략 328킬로미터의 길을 가야 했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추격당할 위험도 없었으므로 여유 있게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가면서 시간을 두고 그동안의 일들을 반추해 볼 수 있었다. 모세가 여호와와 교통했던 바로 그 바위 언덕 위에서 엘리야는 하나님과 특별한 교제를 나누었다.
19:9 그곳 굴에.
모세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진 곳은 시내산에 있는 한 반석 틈이었고(출 33:22), 엘리야가 자신의 외로운 거처로 삼은 곳도 바로 그 동굴이었을 것이다.
19:9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질문은 틀림없이 엘리야의 정곡을 찔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었다. 결국 그가 왜 거기에 있었는가? 누가 그를 거기로 불렀는가? 거기에 꼭 가야 했단 말인가? 이제 거기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최근 바알에게서 돌아선 사람들을 교도하고 격려하면서 이스라엘에 있지 않고 왜 여기 있단 말인가? 고국에서는 그의 봉사가 크게 요구되었는데도 그는 지금 외국 땅에서 홀로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후회나 자책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이 아니고 마음을 진지하게 살필 시간이었다. 엘리야가 다시 자제력을 회복하고, 하나님 안에서 용기를 얻는 법을 배우고, 하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에 착수하기를 배운 후에야, 도망하면서 내동댕이친 그 일을 하기 위해 그의 나라로 돌아갈 준비가 될 것이었다. 그에게는 배워야 할 교훈이 많이 있었다. 그 동굴은 그의 교실이고 여호와는 그의 교사였다(참조 선지자와 왕, 168).
19:10 열심이 특심하오니.
엘리야는 매우 큰 열심으로 여호와를 위한 사업에 종사해 왔는데도 사람들이 자기의 생명을 취하려고 찾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은 원수의 땅이므로 원수를 섬기는 남녀가 많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대쟁투에서 하나님은 사단의 길을 완전히 차단해 놓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는 사단이 전쟁 규칙이 공정치 못해서 자신에게는 정당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쉽게 짜증내고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성도들에게 현명하지 못한 태도요 선지자에게도 바른 태도가 아니다.
19:11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엘리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자신의 연약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이었다. 여호와가 모세 앞으로 지나가시면서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 34:6)이라고 당신을 계시하신 곳이 바로 이 시내산이었다. 그곳에서 엘리야도 하나님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형성해야 하였다.
19:11 강한 바람이.
엘리야가 동굴 밖을 나섰을 때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지진이 땅을 뒤흔들었다. 모든 것이 다 요동하는 것 같았다. 하늘은 불이 붙고 땅은 산산조각날 것 같은 힘에 의해 진동하였다. 이 모든 것은 선지자의 격정적인 성격과 조화를 이루었다. 그가 배울 필요가 있었던 것은, 이 힘들이 비록 강하고 역동적이긴 했지만 이 자체만으로는 하나님의 영의 참 모습을 그려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가장 큰 동요를 일으킨 사람이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서 가장 많은 일을 성취하는 것은 아니다.
19:12 세미한 소리.
바람과 지진과 불이 잠잠해진 후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드디어 여기에 여호와가 당신의 종에게 자신을 계시하기로 한 모습이 나타난다.
19:13 얼굴을 가리우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본능적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렸다. 그의 혼란스런 마음은 잠잠해지고 그의 성급함은 누그러졌다. 매우 흥분되고 충동적인 선지자는 이제 겸손하고 유순해져 여호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었다.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거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사 30:15).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임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죄인들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누그러뜨리는 조용한 일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가장 큰 성과를 볼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업에 큰 성과를 가져오는 것은 반드시 웅변이나 논리나 학문만이 아니라 성령의 조용한 활동으로 말미암는다.
19:14 열심이 특심하오니.
대답은 앞에서 했던 것과 같은 표현이지만 그 정신은 달랐다. 선지자는 이제 차분해지고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는 사실들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에 대해 더 이상 전과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의 생명을 찾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기꺼이 나아갈 것이었다. 이제 나아가는 엘리야는, 많은 사람이 목도할 수 있도록 큰 동요를 일으키는 불이나 광풍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더 조용한 방법으로 각처에서 사람에게 말을 하여 그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 영속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나아가는 새 엘리야이다.
19:15 네 길을 돌이켜…가서.
이 말은 엘리야가 자신의 일에서 물러난 것은 잘못이었으며, 그의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하나님께는 아직도 엘리야에게 시킬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19:15 하사엘.
참조 왕하 8:7, 8 주석.
19:15 기름을 부어.
참조 16절 주석.
19:16 님시의 아들.
실제로 예후는 님시의 손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님시의 아들인 여호사밧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왕하 9:2, 4). 하지만 그는 보통 님시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왕하 9:20; 대하 22:7). 히브리어에서 “아들”이라는 단어는 손자나 심지어는 그보다 훨씬 더 먼 후손을 가리키는 데도 쓰일 수 있다.
19:16 사밧의 아들 엘리사.
여기 이 경우에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의미이지만 선지자들이 문자 그대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어떤 제사장들(출 40:15; 민 3:3)이나 왕들(삼상 9:16; 10:1; 16:3, 13; 왕하 9:3, 6; 시 89:20)은 특정한 사명을 위해서 처음으로 구별될 때 기름부음을 받았다. 성소의 기명들과 같은 무생물도 때로 기름부음을 받기도 했다(창 28:18). 여기의 “기름을 붓는다”는 말은 좀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을 지닌 어떤 학자들도 있다. 즉 실제로 기름을 붓는 형식을 포함하지 않고 단순히 하나님을 위한 어떤 봉사를 수행하기 위하여 사람과 물건을 구별한다는 의미로 쓰였다는 것이다(참조 삿 9:8). 하사엘과 예후 그리고 엘리사 이 세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봉사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에서는 각각 달랐다. 이스라엘은 아람 왕 하사엘에게 계속 외압을 받았는데(왕하 8:12, 19; 10:32; 13:3, 7), 이 이방 왕은 하나님의 징벌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참조 선지자와 왕 254, 255,; 사 10:5). 북방 이스라엘은 예후 때문에 내적인 흔들림을 겪었다. 그는 아합의 집과 바알 숭배를 끝장내기 위해 여호와의 손에 들린 도구였다(왕하 9:24, 33; 10:1~28).
19:17 하사엘의 칼.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위에 내려야 하였고, 하사엘과 예후는 이 일을 집행하기 위해 택함받은 도구였다.
19:17 엘리사가 죽이리라.
엘리사의 일은 확실히 하사엘과 예후의 일과 같은 범주에 속하지 않았다. 엘리사가 누구를 죽이기 위하여 실제로 칼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도 엘리사의 죽이는 사역은 비유적 의미 곧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다(호 6:5)는 의미로 수행되었거나, 예레미야의 사역을 묘사하면서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린다(렘 1:10)고 한 것과 같은 의미로 수행되었을 것이다. 선지자들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히 4:12)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고 죽이는 사역을 수행하였다. 엘리사의 사명은 육신의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었다(고후 10:3~6). 죄가 그 대적이었다. 따라서 그 나라에서 근절해야 할 것은 죄악이지 사람이 아니었다.
19:18 칠천 인.
하나님의 선지자일지라도 이스라엘 안에 신실한 자가 얼마나 있는지 헤아리려고 애쓰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안에 경건한 자라고는 자기 혼자밖에 없다는 말을 두 번이나 했다(10, 14절).
19:18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우상 숭배자들은 저들의 예배의 한 부분으로서 자주 자기 손에 입을 맞추거나(욥 31:26, 27) 우상 자체에 입을 맞춘다(호 13:2). 오늘날에도 이방 신전에 있는 우상들에 입을 맞춘다.
19:19 밭을 가는데.
열두 겨리의 소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처럼, 엘리사는 상당한 재산이 있는 집안의 사람이었다. 여기서 열두 겨리의 소가 모두 한 쟁기에 매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엘리사는 종들과 함께 들에 있었고 각각 자기 쟁기와 함께 있었다. 소는 쟁기 하나에 두 마리씩 매여 있었을 것이다(선지자와 왕, 218). 엘리사는 쟁기 앞에서 하나님을 위한 선지자직에 직접 부름받았다.
19:19 겉옷.
이 겉옷은 약대 털로 만든 외투로, 선지자들 특유의 의복이었다(참조 막 1:6; 시대의 소망, 102).
19:20 소를 버리고.
엘리사는 즉시 응했다. 비록 그가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서 의의 사업을 위한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될 만한 자질을 보았다.
19:20 내 부모와 입맞추게.
엘리사는 자신의 소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집을 떠나기 전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19:20 돌아가라.
엘리사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시험하고 있었다. 엘리야와 함께 갈 것인가 아니면 집에 남을 것인가?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19:21 소 한 겨리.
엘리사는 밭을 갈고 있던 소 두 마리를 잡고 쟁기와 멍에로 불을 놓아 고기를 삶았고, 이렇게 하여 그것들이 다시는 필요하지 않을 것임을 나타냈다. 그는 과거에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착수하고 있었다.
19:21 수종들었더라.
연로한 선지자는 젊은 친구이자 조수가 될 사람이 필요하였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여호와를 위한 사역에 하나로 연합하였다. 두 사람의 연합은 모세와 여호수아, 바울과 실라를 떠올리게 한다. 두 사람은 각기 개성이 달랐다. 젊고 차분한 엘리사는 더 나이가 많고 성급한 엘리야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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